세자 책봉과 즉위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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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8년(태종 18년) 6월 3일, 태종은 세자의 여러 가지 비행에 고심하던 중 신료들의 폐세자 주청에 대한 상소가 연이어 올라오자, 세자의 행동이 지극히 무도하여 종사를 이어 받을 수 없다고 판단하여 세자를 폐위시키고 광주(廣州)로 추방하였다. 이어 충녕대군을 새로운 세자로 책봉하였다.[9][2]

같은 해 8월 10일, 태종은 세자에게 양위하였다. 세자는 양위를 거절하였으나 오랜 기간 반복된 태종의 양위를 받아들여 경복궁 근정전에서 즉위하였다.[10] 태종으로부터 양위를 받아 즉위하였으나 세종의 재위 초기에는 태종이 상왕으로서 군권과 인사권을 직접 행사하였고, 세종의 장인인 심온을 비롯한 외척세력을 숙청하였다.

이후 세종은 신분을 가리지 않고 유능한 인재를 많이 등용하여 깨끗하고 참신한 정치를 펼쳐 나갔다. 그러면서도 인사와 군사에 관한 일은 세종 자신이 직접 처리함으로써 왕권과 신권의 조화를 이루었다. 아울러 국가의 행사를 오례에 따라 유교식으로 거행하였으며, 사대부에게도 주자가례의 시행을 장려하여 유교 윤리가 사회 윤리로 자리 잡게 만들었다. 또한 4대사고를 정비하고, 《삼강행실도》, 《효행록》 등을 간행하여 유교를 장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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